Wednesday, July 9, 2008

단편소설 개구리 밥 비평

미국에 있는 오선희 씨의 "개구리밥 비평
글쓴이: 연정 조회수 : 13 07.09.15 00:43 http://cafe.daum.net/betterthink/EFHQ/17 개구리 밥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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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설득이나 설명하지 않고 코드를 가지고 부호를 풀어 간다.
설득하지 않는 , 설명하지 않는 얘기를 듣기란 좀처럼 슆지 않은데…

개구리 밥과 돌확 그리고 돌확을 안은 이끼의 코드
개구리 밥의 중심적인 핵을 이루는 이 세가지 주된 코드를 이해하지 못한채
개구리 밥의 맛의 깊이를 음미 할 수 없다.
돌확같은 남자, 그는 아내를 암으로 잃고 아내의 유언대로 재혼을 한다.
작은 조롱새처럼 약한 여자를 암이란 스라린 병마로 잃고서도 그는 여전히
아내를 닮은 여자를 찾아 그 여자와 재혼을 한다.
돌확처럼 단단한 자신의 내면을 안고 마침내 자신의 속무늬가 되고
자신을 감싸 안는 또 다른 피막이 된 죽은 자 그러나 여전히 살아 있는 아내
그 아내는 자기 안에서 끊임없이 배설된다.
설사라는 코드로 작가는 죽은 아내의 존재 그리고 죽은 아내를 향한 남자의 여전한 상실의 슬픔을 쏱아낸다.
검은 이끼는 남자의 내부에 존재하다 다시 상실로 흘러 내린다.
남자는 돌확을 바라 본다.
돌확에 여전히 피어 있는 돌확 속의 검은 꽃을 바라 본다.
그 꽃을 피우기 위해 남자는 꾸준히 돌확을 채운다.
물이란 코드를 작가는 이중적으로 사용한다.
돌확이 안은 물은 이끼란 꽃을 피우기 위함이다.


마흔이 너머 자기 편이 절실해서 마침내 결혼 한 여자.
한 남자가 지닌 영혼의 목소리의 돌확처럼 단단한 기호에
천둥 같은 포호에 붙들려 확실한 자기 편 같아서 자신의 나머지 생을 의탁한 여자.
그녀는 자신의 어눌하지만 확실한 소리를 늘 안으로 삼킨다.
돌확 안에 뜬 뿌리 없는 개구리 밥처럼 …
천둥을 능가 할 소리가 어디 있겠는가?
여자는 천둥 같은 소리를 자기의 소리는 삼키고 행동으로 누른다.
돌확의 이끼를 없애고 마침내 자기 존재를 그 안에 띄운다.
이끼란 벨벳처럼 검은 꽃을 씻어내 버린 존재 앞에 남자는 분노한다.
개구리 밥… 이뇨제로 좋다는 .. ( 여자의 슬픔을 배설하는…) 말에 여자는 개구리 밥을 많이 산다 그리고 이끼를 없앤 돌확에 개구리 밥을 가득 띄운다.
줄기도 뿌리도 없는… (줄기.. 남편은 둘만의 아이를 원하는 여자의 청을 단호히 거절한다 . 죽은 아내가 재혼해도 아이는 갖지 말라고 했다며…)
뿌리 ( 서로의 가슴 속에 희노애락의 나이테가 새겨 지지 않은 관계란 막막하기 그지 없었다.)가 없는 막막한 개구리 밥은 그러나 공기 저장 주머니를 감추고 있다.
( 공기 저장 주머니을 어디에 감추고 있는 걸까 인생을 물위에 떠서 살아야 하는 삶이지만 나름대로 살아 갈 궁리를 하는 잎이 대견하기만 하다.)
여자는 돌확 속에서 사는 자기의 존재가 개구리 밥 같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살아 갈 궁리도 섰다. 공기 저장 주머니를 감추는 것이다.
그리고 뿌리도 가지도 없이 그냥 떠 잇으면서 꾸준히 자기 슬픔의 이뇨제로 쓰는 것이다. 끊임없는 녹색 생명력으로 피어 낫다 마침내 검은 꽃으로 드리우는
전처의 존재와 여자는 지속적인 자기 띄우기를 계속한다.
반복적인 씻어 냄으로써…
그런 여자를 남편은 청승맞아 싫다고 한다. 개구리 밥은 물위에 떠 잇어 청승 맞아 싫고 , 검은 이끼는 돌확에 밀착된 존재라 씻어 내지 못하는가?

여기에 전적인 여자의 편.. 슬기가 이름의 개가 등장한다.
여자는 늘 자기의 소리를 개구리 밥의 공기 저장 주머니 처럼 속으로 삼키지만
마침내 슬기는 여전히 자기를 죽어 세상에 없는 세미란 개로 취급하는
남자에게 대항한다.
자기 존재를 한사코 부인하는 원흉같은 주인 남자의
뒤꿈치를 물어 놓은 슬기의 짧은 꼬리는 하늘을 향해 빳빳히 서 있다.

여자가 선택한 슬기란 이름은 공기 저장 주머니를 감추고 사는 개구리 밥만큼 슬기롭다.
작가의 유머는 나즉하지만 대단하다.
작가의 위트는 대미를 장식한 통쾌한 슬기의 쾌거를 통해 독자에게
묵은 체증이 펑 뚫리는 장쾌한 홈런을 날린다.

상처한 남자와 결합 이 이혼한 남자와의 결합보다 어렵다고 한다.
그 어려움을 작가는 작가 는 눌변이라고 하지만 편집 회의 까지 주관하는
삶의 체험 속에서 터득한 지혜와 예민한 감성으로 독자를 이해의 진동 속으로
가만 가만 끌어 들여 마침내 독자 모두를 여자의 편으로 만들어 낸다.
무서운 힘이다.
조용한 혁명처럼….
여자는 돌확의 검은 이끼를 씻어 내고 개구리 밥을 돌확 속에 띄우고
이끼를 손톱으로 끍어 내듯 남편의 돌확처럼 단단한 몸이 무너질 때
무너진 틈새에 핀 자기 존재의 역활을 발견하고 기뻐한다.
남자의 뇌성같은 화에 살아잇는 모든 존재가 시들고 아파할 때
그녀는 숨겨진 공기 주머니처럼 끊임없이 살아서 조용한 혁명을 계속한다.
돌확의 묵은 이끼를 씻어내 버린 여자의 당찬 도전은 슬기의 항거처럼
슬기롭다.

오랜만에 튀지 않고 ,지루하지 않는
한편의 잘된 영화를 본 것 같다.

눈이 부시다.


댓글 3 개 이 글을...(0)

누란 정말 비평글을 잘썼네요. 차분한 어조로 조근조근 풀어나가 작품 읽는데도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아요. 저도 마지막 장면의 확 달라진 톤에 당혹스러우면서도 통쾌했거던요. 07.09.15 09:50

연정 2002년에 받은 글인데, 마지막 구절이 민망해서 여태 공개하지 못했습니다. 작가의 모든 계산을 간파하고 읽는 독자가 있다는 것은 한편 두렵기도 합니다. 07.09.15 12:41

한강 작가도 쓸 때 저 모든 것을 계산하고 썼을까요? 그저 토해내듯 쏟아져 나온 것이 결국 저런 것일 테지요. 독자는 작가가 전혀 의도하지 않은 것까지 간파할 수 있어야 좋은 독자일 것 같습니다. 정말 잘 쓰네요. 오경희씨 글은 집안 내력인가 봐요. 어떤 식으로든 닮은 것 같아요. 07.09.15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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