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May 27, 2010

나 귀


영혼의 숲속에서 하느님과 함께
당나귀는 여름 내내 언덕을 오르내리며
고된 물통을 포도밭으로 져다 날랐습니다.
포도밭의 포도알들이 알알이 익어가고
그중에서도 제일 크고 잘 익은 송이들은 그분 몫이지요.
당나귀는 밤이 되면 서늘한 물가에서 쉽니다.
밤바람은 포도밭으로 별 한 됫박을 퍼붓고 은싸라기를 뿌립니다.
당나귀는 압니다.
하느님이 바람의 일을 거들라 시키신다면 도울 재주가 없다는 것을.
포도밭에 포도송이들이 탐스럽게 매달리고
사람들은 열매를 상자에 가지런히 담습니다.
당나귀는 양 어깨로 기쁨의 수레를 끌며 마을로 내려갑니다.
당나귀는 튼튼한 두 어깨를 주신 그분께 감사를 합니다.
추운 겨울이 오고 텅 빈 포도밭에는
바람이 혼자 나와 일을 하고 있습니다.
가을 내내 마저 따지 못한 포도나무 잎을 따는 일입니다.
기쁨을 위해 수고한 잎들도 흙으로 돌아가 이제는 좀 쉬어야죠.
당나귀는 마른 포도잎의 향긋한 내음을 기억하며
몇 잎을 물어다 마구간으로 가져옵니다.
그것들 모두는 포도송이를 받쳐주었던 기쁨의 봉지들입니다.
이 세상에는 사람들 눈에 잘 안 띄거나 보잘것없어 보이는 일들 속에 신성이 깃들어 있음을 당나귀는 압니다.
그는 얼어오는 마구간 한구석에 누워 내 몸이야말로 천국이라고 생각하며
몸을 주신 하느님 품안에서 큰 행복감을 느낍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자신이 큰 죄를 진 것 같습니다.
진정한 행복은, 맛보기 전에
하느님께서 먼저 맛보신 다음 남기신 것에 조금 입대야 하는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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