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May 27, 2010

신성한 숲



신성한 숲·1 여느 새벽보다도 일찍 나는 수레를 끌고 숲으로 향했다. 아직 어둠이 걷히지 않은 하늘 위에는 하현달이 희미한 빛을 뿌리며 하얗게 사위어가고 있었다. 별빛은 잿빛 구름장에 가려져 있었다. 동이 트기에는 너무 이른 새벽이었다. 내 당나귀는 간밤에 늦게까지 고된 짐을 실어날랐기 때문에 깊은 잠에 곯아떨어져 있었다. 나는 어둠 속에서 나무껍질같이 거칠어진 당나귀의 살결을 쓰다듬으며 잠에서 깨었다. 당나귀의 잔등은 소나무껍질보다도 더 거칠고 딱딱했다. 당나귀는 그때까지도 잠에서 덜 깨었는지 히이잉 하고 몇 번인가 우는 시늉을 했다. 그때마다 뜨거운 입김이 새벽공기 속에서 흰꽃을 만들며 희게 빛났다. 여느 새벽보다 이른 새벽이었다. 내 당나귀는 그 점을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들판 끝에서 먼동이 터 하늘가로 쓰러진 잿빛구름 기둥들 틈에서 붉은 빛이 움트기 시작할 때 주인을 따라 이 길을 걷던 습관이 배어 있기 때문이리라. 하늘에서는 잿빛 구름장이 빠르게 이동하고 있었다. 언 하늘에는 새벽별이 박혀 있었다. 얼음의 거울에서 수없이 눈깜짝하는 빛의 반사들……. 어둠 속으로 나 있는 길은 아직 아무도 지나가지 않은 새길처럼 고요하고 은밀했다. 수없이 다니던 길이었다. 그러나 전혀 한번도 밟아 보지 않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신성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낯익은 것도 경우에 따라 처음처럼 다가오는 수도 있으리라. 수레에 실은 곡식들은 어둠 속에서도 착하게 잠들어 있었다. 마치 착한 딸들처럼. 나는 그것들이 잠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도록 조심스레 당나귀를 몰고 걸어갔다. 숲으로 가는 언덕길은 언제나 울퉁불퉁한 자갈길이었다. 언덕 입구에 다다르자 당나귀는 하얀 입김을 하늘을 향해 몇번인가 쏟아내었다. 모든 희미한 빛이 더욱 고요해지는 그 시각에 당나귀가 갑자기 울다 그쳤으므로 주위는 더욱 적막하고 고요했다. 나는 나귀에게 타일렀다. 공손하라. 숲에 가까이 왔다. 저 숲의 고요를 관장하는 분에게 네 울음소리가 들려 그분의 단잠을 깨워놓지 않도록, 조용하라. 숲은 어둡고 고요하다. 내 수레바퀴가 돌부리에 걸려 낡은 소리로 고요를 깨뜨리기 시작했으므로 나는 몸을 조아리며 사방의 고요를 향해 수없이 사과했다. 나는 어린 사제를 타이르듯 당나귀를 달래야만 했다. 착한 바퀴들아, 공손함을 배워라. 먼 길을 더 가깝게 땅에 귀 댄 채 들을 수 있는 너희들의 귀에 이 숲 속의 고요가 깃들면 영혼은 즐겁게 자갈길을 노래부를 수 있으리라. 숲 한가운데로 들어서자 얼어붙은 호수가 나타났다. 호수는 희부연 광채에 싸여 빛을 뿜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밤새들이 언 공기를 털어내며 깃을 움츠렸다. 그때 언 호숫가에서 새벽별이 눈을 깜짝거렸으므로 나도 모르게 눈을 깜짝이며 신호를 보냈다. 이제 조금만 더 있으면 동이 트고 밝아올 것이다. 天上의 일에 경건한 마음을 지닌 이들의 신성한 노동의 첫 일과는 고요한 빛을 미리 마중 나가는 일. 나와 나의 나귀는 수레에 실린 곡식들과 함께 天上에서 맨 처음 터지는 빛을 맞이하게 되리라. 숲은 언제나 비밀스러운 부름이 있는 곳. 성스러운 붉은 빛이 날개치는 바윗가에서 우리는 기나긴 밤이 거대한 빛으로 바뀌는 것을 보게 되리라. 그리고 숲의 끝편에서 바람결에 실려오는 신성한 목소리가 귀에 닿기 전에 회리바람이 불어 그 소리를 앗아가는 일은 다시는 없으리라. 하지만 기다리는 자에게 神은 언제나 默言으로 말할 뿐. 神의 말씀은 언제나 새벽빛같이 눈짓으로만 존재할 뿐……. 여느 새벽보다도 일찍이 별들은 광채에 싸인 빛들을 숲길에 뿌렸고 나는 숲가운데 호수를 지나 그분을 찾아갔다. 天上의 드높은 곳은 아직 어둠에 잠겨 있었지만 나는 기다리고 있었다. 바윗가에서 눈 뜨라, 부르는 나즉한 소리. ■ 땅과 암초 말하지 않고 노래했어야 했다, 그 새로운 영혼들은, 무문관(無門關)에서 면벽수도를 끝마친 두 고승이 같은 날 같은 시(時) 암굴을 나오게 되었는데 한 분이 바로 直指寺로 간 觀應스님이고, 또 한 분은 제자 한 명을 달랑 데리고 곧바로 강원도 산 속 사람살 수 없는 곳으로 더 깊이 파묻혀 들어가서 살았는지 죽었는지 생사여부는 물론 그 이름조차도 전해지지 않는 스님이다. 산(聖)도 지옥이요 지상(俗)도 지옥이긴 마찬가지이다. 십년 전 자명스님과 함께 직지사에서 만난 관응스님은 직지사의 노스님으로서 여직 생존해 계시고, 후자의 스님은 내게 머릿속 관념처럼 살아 있었다. 「산정묘지」를 쓰는 동안 나는 관념 속에 살아 있는 이름 모를 스님과 金達鎭 옹과를 오버랩 시켜보기도 했지만, 때때로 그 고승께서 성과 이름을 갈고 평범한 범부로서 지금 어디선가 여생을 보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빠지기도 했다. 지하철이나 버스간에서 80세 이상은 됨직한 단아한 노인이 보이면 나는 그 용모에서 은자의 면모를 조금이라도 발견해보려는 충동을 느꼈던 것이다. 그럴 때 뒤늦게 내 등뒤에서 어느 틈에 배꽃같이 흰 김달진 옹이 찾아와 미소를 짓고 계신 듯한 착각에 빠졌다. 그 순간에 나는 느낀다. 마음 스산한 성자가 내 마음 뒤로 바짝 다가오고 있음을. 흐린 날을 멀리 돌아서 오는 방랑자는 비록 빈궁한 노인의 형상이지만 눈빛만은 형형히 빛난다. 그 눈빛은 얼음을 채찍으로 내리친 듯하다. 하지만 알 수 없는 내면의 큰 상처를 안고 있으며, 그 상처를(들끓어 오르는 그 고뇌를) 가라앉힌 눈빛이 역력하다. 땅(俗)은 거대한 암초에 비유할 수 있다. 인간은 암초 위에서 살다가는 것이다. 이때 암초는 인간에게 있어 구원, 바로 그 장소일 수가 있다. 암초에 부딪친 자는 그 암초를 의지해서 기어올라가 익사를 면할 수 있는 것이다. 땅에서 익사한 자, 그는 시인일 수가 없는 것이다. 땅은 숲처럼 영원의 청춘인 까닭에 나이를 미워한다. 조정권 : 1949년 서울 출생. 중앙대 영어교육과 수학. 1970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비를 바라보는 일곱 가지 마음의 형태], [허심송], [하늘이불], [산정묘지], [신성한 숲] 등. 김수영문학상 수상.

No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