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August 28, 2009

DJ에 경탄했던 세계적 지도자와 석학들

2009년 08월 28일 (금) 18:10 한겨레21
DJ에 경탄했던 세계적 지도자와 석학들
[한겨레21] [2000. 12. 10 평화를 새기다]
바이든·시진핑 "존경하는 정치인"…
파우스트 하버드대 총장, 울리히 벡, 앨빈 토플러 등 날카로운 질문에 놀라
2000. 12. 10 평화를 새기다

노르웨이 오슬로시청 중앙홀에서 노벨평화상을 받고, 평화를 상징하는 인물로 자리매김했다. 그는 역대 정치 지도자 가운데 가장 세계적인 인물이다.

8월19일 밤 9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빈소인 서울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영안실. 최경환 비서관이 "잠시 브리핑할 것이 있다"며 임시 기자실을 들렀다.







"김대중 전 대통령 비서실은 오늘 저녁 전세계에 있는 김대중 전 대통령님의 친구들 500~600명에게 장례 일정에 대해 전자우편으로 알렸습니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 폰 바이츠제커 전 독일 대통령 등 정치권에 있는 분들과 교수님 등입니다."

'김대중의 친구들' 화려한 면면

'김대중의 친구들' 면면이 공개된 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퇴임 이후에도 해마다 세계 각국의 정상급 인사와 지도자들과 신년 우편을 주고받아왔다. 올해도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을 비롯해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 아키히토 일왕, 아버지 조지 부시 대통령, 교황 베네딕토 16세, 호콘 망누스 노르웨이 황태자 부부, 미국 하버드대의 드루 길핀 파우스트 총장 등에게서 연하장을 받았다.

빌 클린턴 전 미 대통령은 새해 선물을 보냈다. 르완다 여성들이 만든 전통 공예품인 '평화의 바구니'(Peace Basket)였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지난 5월18일 방한해 김 전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그 공예품은 르완다 부족 분쟁에서 살아남은 르완다 여성들이 생산한 공예품이다. 그것을 보고 당신의 민주주의를 위한 생애, 민족 화해 노력이 생각이 나서 보냈다"고 설명했다고 한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만찬을 마치고 떠나는 김 전 대통령에게도 각별한 애정을 표시했다. 식탁에서 일어나 휠체어에 오르는 그에게 "다리가 불편하신 것은 '명예의 상징'이다. 얼마 전 남아공의 만델라 전 대통령을 만났는데, 그분도 20∼30년간 좁은 감옥 생활에서 다리 근육이 약해져서 크게 불편한 모습이었다"고 말했다.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한 투쟁을 지성인의 덕목으로 치는 영미계의 전통에서 비롯된 명예일 터이다.

조지프 바이든 미국 부통령은 이 때문에 존경하는 정치 지도자를 말할 때 김 전 대통령을 첫손으로 꼽아왔다. 두 사람은 1983~84년 김 전 대통령의 미국 망명 시절에 첫 인연을 맺었다. 2001년 바이든 부통령이 미국 상원 외교위원장 시절 청와대를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김 전 대통령과 대화를 나누던 바이든 부통령이 "넥타이가 멋있다"고 했다. 김 전 대통령은 "그럼 넥타이를 바꿔 맵시다"라며 넥타이를 풀어 건넸다. 김 전 대통령이 건넨 넥타이에는 오찬 때 스프가 흐른 얼룩이 있었다. 바이든 부통령은 이를 개의치 않고 중요한 행사 때 그대로 매고 나가 "한국의 김대중 대통령이 매던 넥타이"라고 말하곤 했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바이든 부통령이 임명됐을 당시 DJ는 동북아 정세에 대한 바이든 부통령의 폭넓은 이해와 자신과의 인연 때문에 많은 일들을 함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며 "그런 점에서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외교를 전담하면서 바이든 부통령이 보건복지 분야를 맡게 된 점은 조금 아쉬운 측면이 있었다"고 했다.

유럽에서도 그를 존경한다는 이들은 쉽게 볼 수 있다. '시대의 양심'으로 불리는 리하르트 폰 바이츠제커 전 독일 대통령이 대표적이다. 김 전 대통령과 절친한 친구 사이였던 바이츠제커 전 대통령은 "친구를 넘어 인류애를 갖춘 인격자"라고 김 전 대통령을 평하곤 했다. 지난해 8월 한국을 방문한 노르베르트 람머트 독일 국회의장도 그 영향을 받은 이였다. 람머트 의장은 김 전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독일에서 당신만큼 영향력 있는 인물(한국인)은 없다"고 거듭 말했다고 한다.

노르웨이 환경장관 "저의 개인적 영웅"

지난해 9월 노르웨이에서 열린 노벨평화상 수상자 정상회의 개막식에서도 김 전 대통령은 중심에 있었다. 호콘 망누스 노르웨이 황태자는 "김 전 대통령이야말로 민주화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그 자체를 살아오신 분"이라고 말했다. 에리크 손하임 환경개발부 장관은 "저의 개인적 영웅이다. 다른 나라에서 하지 못했던 평화에 대한 많은 일을 하셨다"고 말했다. 마지막 토론자로 나선 세계적인 평화학자 요한 갈퉁 교수도 "그는 좌파도 우파도 아닌 '중도'(middle wing)이며 대단히 인도주의적인 인물이다"라고 말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는 국제적으로도 큰 뉴스가 됐다. < 뉴욕타임스 > 와 〈CNN〉 등 주요 언론들은 김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인터넷판 머리기사로 전했다. 문정인 연세대 교수(정치외교학)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국제적 비중을 생각해보면 당연한 것"이라며 "한국이 아니라 전세계가 큰 지도자를 잃었다"고 말했다. 많은 이들이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인연을 중요하고 자랑스럽게 여겼다. 민주화운동 전력 때문만은 아니다. 통찰력과 지성에 대한 감탄이 더해졌기 때문이다. 그를 만난 이들은 늘 '한 수 배웠다'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지난 4월 중국 방문을 동행한 정세현 전 장관의 말이다. "중국의 차세대 주석으로 첫손 꼽히는 시진핑 국가 부주석을 비롯해 중국 최고의 학문기관인 사회과학원의 교수들과 이야기할 때도 김 전 대통령이 중국의 역사 저변에 흐르는 개념을 지금의 국제 정세에 대입해 듣는 이들의 입에서 감탄이 절로 나오더라." 김대중 전 대통령이 도입한 개념은 '천하태평'의 현대사적 의미였다고 한다. 딩시 대화의 일부다.

"여러분의 조상이 한나라 혹은 명나라, 송나라 시절이었을 때 중국 대륙이 천하였다. 당시의 최고 이상은 '천하태평'이었다. 이제는 지구를 하나의 천하로 보는 천하태평을 추구해야 할 때다. 중국이 먼저 동북아의 천하태평에 역할을 하고, 그 다음에 동아시아, 나아가 전세계의 천하태평을 이룩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제 중국은 미국과 양대 세력이 되었다. 미국과 중국이 잘 협력하면 세계 사람이 복을 받을 것이고, 그것이 잘 안 되면 엄청난 비난을 받게 될 것이다."

시진핑 부주석은 "각하의 높은 식견에 감사하고 귀중한 의견들을 신중히 검토하겠다. 앞으로도 귀한 의견 들려주시기 바란다"고 답했다. 그는 앉는 순간부터 "대학 초년 시절부터 존함을 익히 들었다. 도쿄 납치사건 이후로 사선을 넘나들며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내건 정치인으로 존경해왔다"고 인사했다고 한다. 시 부주석은 한국으로 치면 72학번(1953년생)이다. 1970년대 초반부터 김대중이라는 이름을 알고 있었다는 셈이다. 실제로 시 부주석은 지난 2007년 상하이시 당서기 시절에도 김 전 대통령을 공식적으로 초청한 바 있다.

지난해 4월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만나 대화를 나눴던 울리히 벡 독일 뮌헨대 교수(사회학)도 대화 중간중간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두 사람은 당시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를 위한 포용정책부터 시작해 빈부 격차로 인한 지구촌의 남북 갈등, 기후변화 문제를 거쳐 중국 민주화 문제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벡 교수는 "분명한 분석(precise analysis), 설득력 있는(convincing) 주장에 놀랐다. 많은 정치가들을 만나보았으나 이렇게 명확한 비전을 가진 분은 만나지 못했다" "완전히 설득당했다" 등의 감탄을 연달았다. 위르겐 하버마스와 앤서니 기든스 등과 함께 현대 유럽에서 가장 주목받는 사회학자인 울리히 벡 교수다.

특히 김 대통령이 "중국에서도 부정부패, 빈부 격차는 자본주의 때문이니 이를 폐지하고 계획경제로 돌아가자는 신좌파도 있지만, 이를 민주주의의 부재 때문으로 보고 민주주의를 도입하면 투명성을 보장하는 제도, 감시 체제가 마련돼 오히려 더 빨리 해결할 수 있다는 신우파도 있다. 그들은 나아가 일당 지배가 아니라 복수당을 지향해야 하며 종국에는 스웨덴식 사회민주주의를 지향해야 한다고 말하는데, 중요한 것은 후진타오 주석도 이런 주장에 찬성했다고 한다"고 말하자 벡 교수는 "유럽에도 당신과 같은 비전을 가진 정치가가 있었으면 한다"며 말을 맺었다. 비슷한 시기,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방미 당시 만난 드루 길핀 파우스트 하버드대 총장도 '감명'을 받은 인물로 통한다.

파우스트 하버드대 총장도 감명

파우스트 총장을 만난 김 전 대통령은 대화 막바지에 "총장께서 미국 역사를 전공하셨으니까 한 가지 질문을 드리고 싶다"고 했다. 질문은 이랬다. "링컨이 남북전쟁 후에 남부 사람을 처벌하는 의견에 반대하지 않았다면 어떤 결과를 낳았겠느냐. 당시 미국은 결국 남북으로 분단되지 않았을까?" 파우스트 총장은 놀란 표정을 지으며 "흥미로운 질문이다. 언제나 역사를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은 흥미롭고 어려운 문제다. 링컨이 없었다면 미국이 남북으로 갈라졌을 가능성이 크다고 할 수 있다"고 답했다. 김 전 대통령은 웃으며 이 말을 되받아 "미국의 남북전쟁은 과거의 얘기지만 한국은 지금도 분단돼 있고 통일을 준비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링컨의 교훈을 배우고자 질문해봤다"고 배경까지 설명했다. 미국 남부 역사, 특히 남북전쟁을 전공한 파우스트 총장을 해당 분야의 질문으로 놀랜 것이다.

비슷한 일화는 지난 2007년 5월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 박사의 면담 때도 이어진다. 김 전 대통령은 "언젠가는 신의 존재를 입증할 수 있는 때가 올까. (역사학자) 토인비에 따르면 인간이 육체와 관련해서 의학 연구를 해온 것은 수천 년 전부터이지만, 인간의 내면이나 정신세계에 대한 연구를 해온 것은 19세기 말이 되어서야 프로이트나 융의 연구를 통해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는 극히 최근 일이고, 심층심리학 등은 (아직) 어린이 단계라고 할 수 있지만, 몇백 년이나 1천 년씩 연구를 해나가면 '신이 있느냐, 없느냐'를 알 수 있는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라고 물었다. 정작 토플러 박사는 "그런 논쟁은 1천 년이 지나도 계속되지 않겠느냐"며 말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세계적인 진화생물학자인 리처드 도킨스의 논쟁적인 저작인 < 만들어진 신 > 이 미국에서 출간되고 얼마되지 않은 때의 일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을 외교안보 분야에서 보좌해온 한 전문가의 말이다.
"당분간 공백 메우기 힘들 것"

"지난 2월 방한했던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이 출국 전 기내에서 김 전 대통령에게 전화한 당시의 일이다. 제가 '바빠도 잠깐 들르면 될 것을, 왜 기내 전화로 하냐'고 하자, 김 전 대통령이 '이명박 정부에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클린턴 장관의 판단'이라고 설명하셨다. 국제법상으로 전용기의 기내는 그 나라의 영토이므로, 미국의 영토인 기내에서 전화한 외교상의 전략이었다는 설명이다. 국제법에 달통했다는 저인데, 그 혜안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김연철 한겨레평화연구소장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공백을 메울 수 있는 이는 쉽게 나오기 힘들 것"이라며 "한국 지식인과 정치인들의 집단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태희 기자 herme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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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day, August 17, 2009

암 예방 6가지 규칙

3억 만들기가 크게 유행을 한 적이 있었다. 노후를 대비한 보장자산이라는 말로 현혹했었다. 하지만 3억을 만드는 것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3억을 잃지 않는 것이다.



내가 아는 한 3억을 아끼는 가장 좋은 방법이 조기 암발견이다. 이제는 암의 발병 연령이 점점 더 낮아지고 있다. 지금의 이삼십대가 최소한도 70살까지 산다고 가정할 때 죽기전에 암에 걸릴 확률은 거의 30~40%에 육박할 것이다. 암은 재수 없어서 걸리는 것이 아니다. 여러분이 로또에 당첨될 확률보다는 암에 걸릴 확률이 훨씬 크다. 로또 복권을 사는 분은 로또 복권을 사는 대신 필자가 밑에 열거하는 대로 조기 암검진을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그래서 만약에 암이 조기 발견된다면 그것이 로또에 당첨된 것 보다 더 낫다.



아직도 한참 일할 나이에 암이 뒤늦게 발견된다면 항암치료, 방사선 치료를 할 동안 휴직을 하게 된다. 당연히 몇 천만원의 돈을 손해본다. 암이 뒤늦게 발견되어서 보험에서 해당이 안되는 치료를 받게 된다면 또 몇 천만원의 손해를 본다. 여러분의 배우자나 자녀도 당신을 간병하기 위해서 손해를 본다. 그런데 한국인이 흔히 걸리는 암의 종류는 몇 가지 안된다. 다음 사항만 지켜도 당신은 말기암의 공포에서 80~90%는 해방된다.



1. 담배를 끊어라. 담배는 당신에게 폐암을 유발할 뿐 아니라 사랑하는 배우자의 생명도 단축한다. 당신이 담배를 피우는 것을 보고 자녀가 담배를 피운다면, 당신은 당신 자식을 간접살인하는 것이다.

2. 나이 30세가 넘으면 가급적 매년 위내시경을 해라. 최소한도 2년에 한번은 해라.

3. 나이 40세가 넘으면 가급적 3년에 한번씩 대장내시경을 해라. 최소한도 5년에 한번은 해라.

4. 만약에 당신이 만성 B형 간염 보균자라면 당장 술을 끊어라. B형 간염 보균자가 술을 마시면 간암의 확률이 매우 높다.

5. 여성의 경우 나이 30 이상이면 매년 전문의에게 유방암 검진을 받아라.

6. 여성의 경우 나이 30 이상이면 매년 자궁암 검진을 받아라.



암이 조기 발견되거나 예방되는 로또에 당첨되기 위해서는 철저할 수록 더욱 좋다. 그래서 나는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것보다 더욱 철저한 가이드라인을 썼다.



부수적으로 만약에 당신이 남성인데 나이가 50이 넘은 후에 소변을 보려고 힘을 주는데 소변이 잘 나오지 않으면 전립선에 문제가 있는지 진찰을 받아라. 전립선염이나 전립선 비대증이 있다면 매년 한번씩 전립선암 유무를 초음파로 검사해라.



만약에 당신이 여성인데 목소리가 쉬고 목이 부어 있다면 갑상선 암이 아닌지 초음파로 검사를 받아라.



조기에 암기 발견이 되어서 간단한 수술로 낫거나 좋은 생활 습관으로 암을 미연에 방지한다면 그 것은 3억 이상의 돈의 가치가 있다. 오늘부터 실천하라. 로또를 사는 대신 조기 암검진을 위해서 노력하자.


출처 : 의사들이 만든 무료 의학 상담 게시판 http://www.medicalize.com/doctors/17630

Friday, August 14, 2009

능력 있는 기도


기도는 우리의 유익을 위해 주신 것이다.
정직하고 진실하게 기도하면
(이 말은 하나님 앞에서 철저히 진솔해지고
투명해지는 것을 뜻한다.)
변화되지 않고는 배겨내지 못할 것이다.
기도는 내가 알고 있는 가장 강력한 치료의 능력이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에 영향을 미치는
하나님의 모든 능력을 끌어오기 때문이다.

-아치볼드 하트의 ‘숨겨진 감정의 회복’ 중에서-

능력 있는 기도,
응답 받는 기도의 비결은 단 하나
진실한 마음입니다.
마음을 가면을 벗지 않고는
우리는 결코 문제를 해결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 속 깊은 곳을 보시지만
사랑하시기에 억지로 우리의 감정을 조종하거나
드러내도록 요구하시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조금만 용기를 내서
마음의 문을 열고 주님이 들어오시기를 청하면
언제든지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이제껏 해결 받지 못한 감정의 문제까지
함께 기도하며 치유하시는 분입니다.
겉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늘 우리의 삶을 위태롭게 하는,
문제 이면에 숨겨진 감정의 상처를
이제 진실 된 기도로 주님 앞에 내려놓고
온전히 치유받기를 소망합니다.
두통에 좋은 지압법과 향기요법







풀과 나무 한의원에 내원하는 환자분들을 보면 40대 이상인 분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연령대가 많은 분들은 80대까지 가시기도 하지요. 나이가 많으신 분들에게 많이 오는 두통은 흔히 새벽에 찾아오지요. 다음의 환자분도 그러한 경우였습니다.







“ 올해 75세되신 어머니께서 꼭 새벽에 두통이 옵니다. 다른데는 몸이 불편하신 곳이 없는데 새벽녘이 되면 두통이 와서 꼭 다시 자리에 눕고는 하시는군요. 큰 병원에 가서 진단을 해봐도 정확한 병명이 안 나옵니다. 평소 소화불량이 있고 몸이 마른체형이십니다. 어떻게 치료가 가능할까요? ”




흔히 나이를 드신 분들에게 오는 두통은 몸이 허해서이기도 하고 위장이 약해져서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위에 적은 환자분도 위장 장애를 오랫동안 앓아 오신데다가 나이가 드셔서 몸이 허하며 혈이 탁해져 두통이 오는 것이지요. 그러한 증상이 새벽마다 찾아오는 것이 거의 2년이 넘어가신다면 두통에 많이 만성화가 되신 경우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두통은 우선 혈액의 탁함을 제거해 주어야 합니다. 흔히 한방에서는 어혈이라고 하는데 위장의 기능이 저하가 되게 되면 담이라는 물질이 생성이 되는데 이러한 담이 혈액속에 녹아 들어 혈행을 막고 , 잦은 병증을 만들어 내는 것이지요. 이러한 어혈을 제거하는 과정은 탕약 치료로 충분히 가능합니다. 그와 동시에 혈액의 흐름을 바로 잡아주기 위하여 경락을 자극하는 요법을 쓴다거나 침, 뜸, 부항등을 병행하는 것은 두통을 신속하게 잡아줄수 있는 하나의 요법이 되지요.




두통을 겪으시는 분들은 방치하거나 무관심한 경우가 많습니다. 되도록 나으려는, 그리고 통증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하여야 합니다. 두통에 좋은 지압법과 향기 요법을 소개합니다. 두통의 통증을 약간은 잊게 해주는데 도움이 될것입니다.




< 지압법 >




① 머리 정 중앙부터 지압을 시작하여 가볍게 문지르고, 머리 옆면, 귀 위의 머리 부
분을 누르면 머리의 통증을 완화시키고 머리를 맑게 해주는데 도움이 된다. 이러
한 지압법은 편두통이나 머리나 목덜미의 뻐근한 통증을 없애주는데 도움이 된다.




② 목뒤에 머리 카락이 나는 부분을 마사지해준다. 이러한 방법은 어깨의 통증까지
있을때 해주면 좋다.




③ 목뒤에 오목하게 들어간 부분을 눌러주면 뒷목이 결리고 몸이 쑤시는데 도움이
된다.




④ 어깨뼈의 위쪽을 꾹 눌러준다. 이러한 방법은 등의 통증을 완화시켜준다.










< 향기 요법 >




향기는 정신을 이완시킨다. 그리고 마음을 편하게 해주기에 두통이 심할 때 좋다. 우리는 흔히 이러한 것들을 아로마 요법이라고 부른다.




① 페퍼민트는 박하향을 풍겨 기분이 우울하거나 피로감을 느낄때 이러한 것을 잊
게 해준다. 또한 기운을 나게 하고 소하 기능을 향상시켜준다.




② 긴장성 두통으로 목이 뻐근할때는 라벤터 ,베이질등의 액체를 찍어 발라주면좋다.



라벤더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이완시키는 작용을 한다. 스트레스로 어깨가 많이

경직된 경우에는 3~4방울을 목덜미에 뿌려보자 . 그러면 한결 좋아진다.






풀과 나무 한의원도 이러한 향기 요법을 병행하여 두통을 치료합니다. 두통에 좋은 많은 치료 프로세스를 가지고 좀 더 빠른 효과와 높은 만족도를 위하여 계속 연구 계발을 하고 있지요. 두통 없이 사는 그날을 위하여. 저희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출처] 두통에 좋은 지압법과 향기요법|작성자 두통치료

Wednesday, August 12, 2009

모낭충 없애는 방법

모낭충은 인간의 모공속에 기생하며 살고 있는 피부진드기 이며 모공하나에 한마리에서 많으면 다섯마리까지 살며 모공속의 피지를 먹고 살고 있습니다.피부속에서 영양분을 섭취하고 실핏줄 및 세포 조직을 자극시키어 피부에 여드름, 기미,주근깨, 반점, 모공의 확대등을 일으키게 됩니다.

모낭충은 피하 2~3mm속의 진피층에 살면서 진피층의 조직인 콜라겐과 엘라스틴을 갉아 먹으며 살고 진피층에 얽혀있는 실핏줄을 갉아먹어 모세혈관을 파괴시켜 피부의 자생력을 약화시킵니다.

날카로운 입과 8개의 갈쿠리발로 모공과 모근속을 밤새들락날락 하면서 가려움증을 악화시키고 1회에 50여개의 알을 낳아 60일만에 1300만 마리로 왕성한 번식을 하여 90일 정도 살며 모공속에서 죽게 되며 모공속을 현미경으로 살펴보면 모낭충,알,배설물,사체,화장품찌꺼기 등을 볼 수 있습니다.






모낭충 없애는 방법

1.모낭충은 알칼리성에 활발한 활동과 번식을 하고 있으므로 태어날때 부터 우리의 피부는 약산성을 가지고 태어납니다.따라서 약산성(ph4.5~55)인 피부를 유지 시켜 주게 되면 모낭충의 활동과 번식이 약화 됩니다.

2.햇빛속에 자외선이 모낭충을 없앨수 있다고 합니다.그러나 그사체가 피부속에 그대로 남게 되어 피부트러블을 일으킬수 있으며 모공속의 노폐물을 깨끗이 제거해 주어야 합니다.또한 자외선은 피부노화의 주범이면서 비타민D를 생성하기도 하므로 절제된 조절이 필요하다 하겠습니다.

3.보통 비누는 세안력을 높이기 위해 알칼리 성분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러한 알칼리 환경은 모낭충이 살기 좋은 환경입니다.따라서 비누로 세안후 마지막 헹굼시에 산성 성분인 레몬이나 식초를 조금 섞어 주어 피부를 약산성을 회복 시켜 줍니다.

4.쌀을 씻은후 쌀뜨물을 이용한 세안법은 많이 알려져 있으며 이러한 세안법역시 피부의 알칼리화를 막기위한 좋은 세안방법 이므로 모낭충이 살기 어려운 환경으로 변화 됩니다.


모낭충은 알칼리 환경에서 더욱 활발한 활동을 하게 되므로 얼굴을 깨끗이 하겠다고 알칼리성의 비누로 자주씻게 되면 결국 노폐물은 많이 감소하겠으나 얼굴의 천연 방어막인 피지막은 사라지고 피부는 건조해지고 알칼리로 변화하게 되어 모낭충의 번식과 활동이 많아 지게 됩니다.

여드름등과 같은 피부트러블이 발생했을때 자주씻는것은 피부를 산성화,건조화 시키게 되어 모낭충의 활동이 활발하게 되므로 피부건강을 더욱 악화 시키는 결과가 오게 되며 따라서 세안은 하루에 2회 정도가 적당하며 여름과 같이 피지와 땀이 많이 발생 할 경우 가벼운 헹굼 정도를 실시하는것이 피부건강에 좋습니다.

Thursday, August 6, 2009

감리교 (그리스도교) [監理敎, Methodism]




18세기에 존 웨슬리가 영국국교회를 부흥시킨다는 취지로 시작한 운동.
오늘날에는 감리교회 형태로 세계 도처에 남아 있다.

1738년 영국국교회 성직자 존 웨슬리는 한 종교집회에 참석했는데, 그의 〈일기 Journal〉에 따르면 이 집회에서 "마음이 이상하게 뜨거워짐"을 느끼고, 예전에는 알지 못하던 개인 구원의 확신을 체험했다고 한다. 그는 곧 조지 화이트필드와 협력하여 교회가 자기들을 방치하고 있다고 느끼는 사회의 소외계층을 상대로 야외설교를 시작했다. 그후 웨슬리는 교리상의 문제로 화이트필드와 헤어졌지만, 많은 평신도와 몇몇 성직자가 그의 운동에 가담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진 인물은 그의 동생 찰스로, 그가 지은 찬송가들은 감리교 부흥의 메시지를 표현했다.

이들은 영국국교회 안에 한 '단체'(society)를 형성했다. 웨슬리는 이들이 영국국교회를 떠나지 않기를 바랐지만, 몇 년 동안 긴장관계가 계속되다가 웨슬리가 죽은 지 4년 뒤인 1795년에 이들은 정식으로 영국국교회와 결별했다. 중앙기관의 강력한 권위와 효율적인 지방조직을 결합한 잘 짜여진 교회 행정 및 평신도 설교자들의 기용에 힘입어 이들의 운동은 19세기 내내 급속도로 확산되었다. 감리교는 특히 팽창해가는 공업지대에서 크게 성공을 거두었는데, 그것은 노동자들이 신앙으로 경제적인 좌절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왔고 때로 근검절약으로 경제의 향상도 도모하도록 장려했기 때문이었다.

미국에서는 1784년에 '감리교감독교회'(Methodist Episcopal Church)가 자치권을 지닌 교단으로 설립되었다. 이 교단 설립을 이끈 인물은 프랜시스 애즈베리와 토머스 코크로서, 이들은 웨슬리의 원칙에 따라 미국교회를 조직하되, 정착이 이루어진 지역과 미개척지역의 현실에 맞추어 수정했다. 독립전쟁 직전에 이르러서야 감리교 순회설교자들이 처음 미국에 도착했지만, 19세기 중엽까지 감리교는 미국의 다른 어느 교단보다 많은 교인을 확보하기에 이르렀다. 이토록 눈부신 발전은 특히 아메리카의 변방에서 일어났는데, 그것은 감리교 순회목사들이 말을 타고 변방 사람들을 찾아다니면서 쉬운 말로 설교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감리교가 미국 개신교에서 그처럼 활력이 넘치는 교파가 될 수 있게 한 것은 감리교의 독특한 제도였다. 지역단위로 종규를 집행하는 감리교도들의 '속회'(屬會 class)가 조직되었고, 강력한 중앙기관을 정점으로 하는 계급조직이 있어 순회설교자들을 효율적으로 조직하고 감독한 것이다. 1844년 노예제도 문제로 남감리회와 북감리회로 분열하는 바람에 성장이 일시 저지되었다. 남북전쟁이 끝난 후 두 교단은 교인과 재산면에서 급성장을 계속했다. 감리교가 점차 미국 중산층 개신교의 일반적인 양상을 닮아가자 내부에서 '성결운동'(holiness movement)이 발생하여 19세기말에 갈라져 나갔다. 1939년 남·북 감리회가 재결합하고 그후에도 더 많은 통합이 이루어졌지만 성결운동에서 비롯된 성결교와 오순절교회는 계속 독립교회로 남아 있다. 감리교의 흑인교회들은 1939년 새로운 중앙 기관의 관할하에 통합되어 연합감리교 내에서 독자적인 집단을 이루고 있다가 1968년 이후 점차 감리교 본교단에 통합되었으며, 1974년까지는 인종에 바탕을 둔 모든 교구가 폐지되었다.

영국과 미국 감리교도들이 선교활동에 쏟은 열정 덕분에 감리교는 전세계로 퍼지게 되었다. 미국 감리교에서 유래한 교회들이 영국 감리교회에서 비롯된 교회보다 더 많고, 널리 퍼져 있지만 영국 감리교의 영향을 받은 지역에서는 자치권을 향한 운동이 더욱 순탄하게 진행되어왔다. 19세기에는 영국과 미국 감리교가 모두 여러 차례 분열을 겪었으나, 20세기에 들어서는 점차 재연합의 길을 꾸준히 걸어왔으며, 전세계 감리교도들은 범세계적인 에큐메니컬 운동에 충분한 역할을 감당해왔다.

그리스도교의 신앙·의식·상황은 매우 다양하지만, 감리교는 교리에 순응해야 한다고 엄격히 고집하거나 신학 사색에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역사적인 그리스도교 교리들을 받아들인다. 감리교는 신자의 신앙을 북돋워주고 개인생활을 변화시키는 성령의 능력에 대한 교리(특히 존 웨슬리의 견해와 관련이 있는 구원확신과 그리스도인의 완전에 관한 가르침)들을 강조하고, 신앙의 핵심이 하느님과의 인격적인 관계에 있다고 주장한다. 예배는 단순하고, 성직자와 평신도가 예배 및 교회행정에 함께 참여하며, 소외당한 사람들을 돌보고, 사회 여건을 향상시키는 데 관심을 가진다. 그리스도인이 서로 격려하고 배우기 위한 작은 모임들을 구성하고 협력적인 감독체제(이 체제에서는 모든 목사들이 교회의 중앙기관과 '연결'되며, 행정 지도를 받는다)를 유지하며 존 웨슬리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