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February 8, 2010

















Billy Graham's Suit




Billy Graham is now 90 years old with Parkinson's disease.
In January 2000, leaders in Charlotte , North Carolina , invited their favorite son, Billy Graham, to a luncheon in his honor.

Billy initially hesitated to accept the invitation because he struggles with Parkinson's disease. But the Charlotte leaders said, 'We don't expect a major address. Just come and let us honor you.' So he agreed..


After wonderful things were said about him, Dr. Graham stepped to the rostrum, looked at the crowd, and said,
'I'm reminded today of Albert Einstein, the great physicist who this month has been honored by Time magazine as the Man of the Century. Einstein was once traveling from Princeton on a train when the conductor came down the aisle, punching the tickets of every passenger. When he came to Einstein, Einstein reached in his vest pocket.. He couldn't find his ticket, so he reached in his trouser pockets. It wasn't there, so he looked in his briefcase but couldn't find it. Then he looked in the seat beside him. He still couldn't find it.

The conductor said, 'Dr. Einstein, I know who you are. We all know who you are. I'm sure you bought a ticket.
Don't worry about it.'

Einstein nodded appreciatively. The conductor continued down the aisle punching tickets. As he was ready to move to the next car, he turned around and saw the great physicist down on his hands and knees looking under his seat for his ticket.

The conductor rushed back and said, 'Dr. Einstein, Dr. Einstein, don't worry, I know who you are No problem. You don't need a ticket. I'm sure you bought one.'

Einstein looked at him and said, 'Young man, I too, know who I am. What I don't know is where I'm going.''

Having said that Billy Graham continued, 'See the suit I'm wearing? It's a brand new suit. My children, and my grandchildren are telling me I've gotten a little slovenly in my old age.. I used to be a bit more fastidious. So I went out and bought a new suit for this luncheon and one more occasion.

You know what that occasion is? This is the suit in which I'll be buried. But when you hear I'm dead, I don't want you to immediately remember the suit I'm wearing.. I want you to remember this:


I not only know who I am ... I also know where I'm going.'





"Life without God is like an unsharpened pencil - it has no poi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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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February 7, 2010

커피 입으면 날씬 바르면 탱탱
'카페인 스타킹' 부기제거·열매 노화방지

마시는 커피를 입고 바른다? 기호 식품 커피가 '트랜스포머급' 변신을 하고 있다. 커피에 항산화 효과, 체중 감소 등의 효능이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면서 주목 하는 이들이 많다. 단순히 마시는 것에서 나아가 의류, 화장품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하고 있다.

# 커피로 날씬하게

'카페인 스타킹'은 처음 호주에서 개발됐다. 카페인이 허벅지의 셀루라이트를 줄일 수 있다는 아이디어로 고안된 제품이다. 카페인은 부기 제거, 피부 탄력, 모공 축소 등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피부에 밀착되는 스타킹을 통해 카페인 성분이 피부에 침투해 셀룰라이트를 효과적으로 제거한다는 게 제조사 측의 설명. 카페인 스타킹 회사가 국내 20~50대 여성 100명에게 테스트를 해본 결과, 평균 2~2.5cm 정도 허벅지 둘레가 줄어들었다. 카페인 스타킹이 피부에 접촉된 다른 부위도 두께가 줄어든 것으로 보고됐다.

# 커피로 젊게

피부를 노화시키는 활성산소는 자외선이 큰 적이다. 자외선은 주름, 홍반 생성 등 피부를 늙게 만든다. 항산화제를 이용해 피부의 노화를 막는 게 중요하다.

커피 열매에는 항산화 효과가 풍부하게 함유된 것으로 알려졌다. 활성산소 제거 능력을 측정하는 수치인 '오락 스코어'(ORAC Score)에 따르면 커피 과육 부분에서 추출한 커피 베리 성분에는 녹차 추출물, 석류 추출물, 비타민 C, E 등보다 최고 10배 이상 높은 항산화 수치가 나타났다.

커피의 항산화 효능을 주목한 화장품도 등장했다. 피부 전문 제약사 스티펠은 커피 베리의 항산화 성분을 추출한 레발레스킨을 최근 출시했다. 회사 측은 이 제품을 꾸준히 스킨 케어로 사용하면 유해 활성산소와 자외선, 기온차 등의 외부 스트레스로부터 피부를 보호할 수 있다고 밝혔다.

# 커피의 재활용

일반 커피를 이용해 셀프 관리를 할 수 있다. 마시고 난 커피 원두 찌꺼기를 입욕제나 팩으로 활용하면 피부 관리에 도움이 된다. 커피를 거름망에 넣어 욕조에 담그면 항산화 성분과 식물성 지방성분이 피부를 매끄럽고 윤기 나게 해준다. 풍부한 커피향은 아로마 테라피의 효과도 있다. 또 일주일에 2회씩 커피 찌꺼기를 시트 위에 펴서 얼굴을 바르고 5분간 팩을 해주면 화이트닝과 피부 유수분 밸런스를 잡을 수 있다.

커피는 냄새를 억제하는 성분이 있어 탈취제로 요긴하다. 통풍이 잘 되지 않고 세균이 번식하기 쉬운 부츠에 넣어두면 좋다. 커피 찌꺼기를 말려 망에 넣어 부츠 속에 넣거나 신발장에 놔두면 신발의 악취를 흡수한다. 여름철 옷장에 넣어두고 사용해도 그만이다.

Saturday, February 6, 2010

▲ 캐나다 출신의 세계적인 컨트리 가수 샤니아 트웨인.







세계적인 컨트리 음악 가수 샤니아 트웨인(Shania Twain, 44). 그녀를 생각하면 사람들은 어떤 것들이 떠오를까?

토론토대학의 연구 결과처럼 가장 황금비율의 얼굴을 가진 완벽한 외모? 컨트리 음악 사상 최다 판매기록을 가진 여자가수? 미국 폭스TV 인기프로 '아메리칸 아이돌'에 빅토리아 베컴, 에이브릴 라빈 등과 함께 객원 심사위원으로 참가하는 국제적인 스타? 하지만, 그녀가 어릴 때 먹을 것이 없어 배를 주리며 자랐고, 작은 마을에서 겨울에 난방비를 못내 난방이 끊기기도 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과연 많을까? 인터넷에서 그녀 이름으로 검색하면 화려한 이야기들이 주로 나온다.

하지만, 그녀가 지난 1월에 캐나다 CBC방송에서 밝힌 어린 시절 이야기는 다소 놀랍다. 온타리오주 윈저에서 태어난 그녀는 2살 때 부모가 이혼했고, 엄마는 그녀를 데리고 '티민스'라는 작은 마을로 이사했다. 그곳에서 엄마가 캐나다 원주민과 재혼했고, 양부가 소득이 있을 때는 먹을 것이 있었으나, 돈벌이를 못할 때는 굶어야 했다.

"지저분한 옷에 도시락없이 학교 갈 땐 창피했다"

그래서 그녀는 8살 때부터 동네 술집에서 밤에 노래하기 시작했다. 그 돈이나마 보태야 했다.

"온타리오 북부의 추운 겨울에 자주 난방이 끊겼다. 잠잘 때 옷을 잔뜩 껴입고 잠자리에 들었다. 매우 추운 그곳에서 겨울용 부츠가 없어 고무장화를 신고 학교에 다닌 적도 있다. 간혹 돈이 생기면 전화요금, 자동차연료비, 난방비 중 어느 것을 먼저 지불해야 할지 고민했다. 세탁기가 고장났지만 고칠 돈이 없어 손으로 빨래를 했다. 더러운 옷을 입고, 점심 도시락 없이 학교를 갈 땐 곤혹스럽고 창피했다." 그녀가 출연한 CBC 라디오의 < 더 커런트(The Current) > 라는 프로는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대담프로다. 진행자 애나 마리아 트리몬티는 총선 때 여당 당수(총리)와 세 야당 당수를 불러모아 대국민 토론회를 주도하기도 했고, 캐나다 장관들은 물론 가끔씩 총리도 이 프로그램에 '불려' 나와서 그녀의 질문에 진땀을 흘리곤 한다.

사회보장제도에 의한 지원이 있지 않았냐고 묻자, 원주민 출신 양부는 자긍심이 강한 사람이어서 극빈층에게 주는 지원을 거부하곤 했다고 한다. 가끔씩 원주민보호구역 사람들이 사냥을 다녀와서 상자를 놓고 가곤 했다.

상자 안에는 사냥해서 잡은 토끼, 사슴, 생선 등이 있었고, 한동안은 끼니를 해결할 수 있었다고 한다. 또한 가끔 어머니가 먹을 것을 구하러 차를 몰고 700km나 떨어진 토론토의 노숙인보호소까지 아이들을 데리고 가기도 했다.

한편, 샤니아는 남매들이 가난한 자신들의 환경을 학교에 말할 수 없었다고 한다. 왜냐면 아동보호소나 사회복지사가 아이들 보호차원에서 형제자매들을 데려갈까 두려워했다고 했다. 즉, 위탁가정에 보내거나 아동보호소로 보내게 되는 데, 그것은 곧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살아야 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가난이 무엇인지 겪어봐서 잘 안다"

그녀는 부유한 환경을 당연한 듯 여기고 주위를 돌보지 않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며, 그녀가 다시 그렇게 살고 싶지 않듯 다른 아이들도 그런 환경에 처하게 하면 안된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그녀는 'Shania Kids Can'이란 단체를 만들어 자선활동을 하고 있다. 자신이 자선사업 전문가는 아니지만, 그 아이들이 처한 환경, 심정 등을 겪어봐서 잘 안다고 했다.

로빈 에가가 쓴 책 < Shania Twain The Biography > 에 나온 그녀의 어린 시절에 대한 또 다른 묘사를 보자.

"매일 수십km를 걸었으며 무거운 나무를 날라야 했고, 화장은 물론 비누나 샴푸를 사용할 수 없을 정도로 가난했다. 호수에서 목욕과 빨래를 했지만 난 강했다. 어려운 환경이었지만 난 창의적이었고, 종종 숲속에서 기타와 개만 데리고 홀로 앉아 노래를 쓰곤 했다." 또한, 오지 산간마을에서 사냥, 땔감하는 법을 배웠고, 맥도널드에서도 일했고, 8살 때부터 동네 술집(바), 클럽에서 노래해 번 돈으로 가족을 도왔다. 8살 아이가 술집에서 돈을 버는 것은 법적으로 문제가 있었지만, 밤 12시에 술판매를 금지하고, 바를 폐쇄하면 그 때서야 어린 샤니아가 무대에 설 수 있었다고 한다. 술 취한 사람들과 담배연기로 자욱한 술집은 싫었지만, 노래는 좋아했다며 그곳이 바로 음악을 배우고, 훈련한 곳이라고 말한다.

이런 환경 속에서 티민스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음악밴드와 온타리오주를 연주 여행하며 음악활동을 계속했다. 토론토에서 노래지도를 받을 때 돈이 없어 선생의 집을 청소하기도 했다.

1984년 가을, 토론토 DJ 스탄 캠벨(Stan Campbell)은 < 컨트리 음악뉴스 > 의 기고를 통해, "그녀는 발성폭이 넓으며, 가창력 또한 뛰어나다. 또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힘, 야망, 긍정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다"고 그녀의 재능에 관심을 나타냈다.

어려운 상황에서 도망치고 싶었지만...















그녀가 22살이던 1987년 11월, 그녀의 양부와 친모가 교통사고로 사망하자, 3명의 동생들을 부양해야 했다. 당시 10대 초반이던 동생들과 함께 살기 위해 온타리오 헌츠빌로 이사했다.

다행히 근처 리조트에서 노래를 부를 수 있었다. 하지만, 로빈이 쓴 위의 책에서 그녀는 당시 상황에서 도망가고 싶었다고 한다. 음악도 그만두고 싶었지만, 어린 동생들을 보고 차마 그럴 수 없었다고 했다.

그 후, 이런 저런 굴곡이 있었지만, 작곡가, 밴드, 음악감독, 앨범제작자 등을 만나며 오늘날의 성공을 이룰 수 있었다.

샤니아가 다음 날은 1시간 30분 동안 < 더 커런트 > 진행자로 전 세계 어려운 환경에 처한 아이들을 어떻게 도울지 토론을 이끌었다.

"재능이 있든 없든 모든 아이들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

이 프로그램에서 샤니아는 아동분야 전문가 토론토대학 교수 카트리나 스캇과 온주 아동보호소 지넷 루이스와의 대담했다. 이들에 의하면, 아이들에게 어떤 재능이 숨어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음악가, 작가, 과학자가 될 수도 있다. 설혹 재능이 없을지라도 아이들이 아무 걱정과 어려움없이 교육받을 수 있는 환경을 보장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

더우기 어려움에 처한 아이들이 그런 문제는 '일시적'인 것이지 '영원히 지속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깨우칠 수 있도록 사회가 보호하고 안전하게 보장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요르단 왕비 라니아 알 압둘라(Rania Al Abdullah)와 인터뷰를 통해 왕비와 국제축구연맹(FIFA)이 함께 하는 세계적인 아동 교육지원 운동(1Goal 캠페인)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누었다.

요르단 왕비는 샤니아와 인터뷰에서, "전 세계에 7200만 명의 아이들이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다. 교육만이 가난을 극복하는 가장 빠른 길이다"라며 아이들이 무상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전 세계가 지원해야 하며, 특히 선진국 정치인들이 주도적인 관심을 가지고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라니아 왕비는 3천만 명의 서명을 받아 올 여름 캐나다에서 열리는 G8, G20 정상회담에 참석하는 각국 정상들에게 호소할 계획이다.

"빈부에 상관없이 아이들이 교육을 받을 수 있어야"

요르단 왕비와 샤니아가 강한 의견 일치를 보인 클로징멘트는, 무한 경쟁에 내몰리는 한국 아이들과 비교돼 많은 점을 생각케 한다.

"가난하게 태어났든, 부자부모 밑에서 자라든 모든 아이들이 교육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공정한 룰이고, 기회의 균등이다. 따라서 아이들이 돈걱정 없이, 창피한 마음없이 즐거운 마음으로 학교에 가고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사회가, 우리 모두가 함께 돌보아야 한다." [☞ 오마이 블로그

Friday, February 5, 2010

겨울철 요통해소 올바른 목욕법
기온이 뚝 떨어지면 허리통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이유는 다양하다. 추위엔 몸의 근육이 수축하고 긴장하게 된다. 혈액순환 장애도 허리통증을 불러온다. 비만도 한 가지 이유가 된다. 일반적으로 체중이 1㎏ 늘어나면 허리가 받는 하중은 5㎏ 정도 늘어난다.

겨울철 요통에는 목욕이 좋다. 고도일 고도일병원장은 "겨울철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있으면 피로해소뿐만 아니라 추위로 위축된 근육이나 관절이 풀리고 혈액순환이 원활해져 허리통증을 다스리는 데에도 효과적"이라고 말한다. 특히 몇 가지 사항만 신경 쓰면 허리통증을 줄이는 데 더욱 효과적이다.

목욕 전에는 물 한 잔 마시는 것이 좋지만 목욕 후 커피와 담배는 피하는 것이 좋다.

가장 편안하게 목욕할 수 있는 물 온도는 우리 체온과 비슷한 35~36도다.

이보다 약간 따뜻한 40도까지는 부교감 신경을 자극해 긴장을 해소한다. 머리는 서서 샤워기를 이용해 감는 것이 좋다. 이때 샤워기의 따뜻한 물로 허리에 마사지를 해주면 인대와 근육이 풀어져 통증 완화에 도움이 된다. 목욕 후에는 마사지를 받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목욕 후 마사지로 피로와 뻐근함을 해결하기도 하지만 목욕 후 마사지를 받다가는 인대와 근육에 무리가 가 허리손상을 부추길 수 있다. 목욕 전 뜨거운 물 속에서 몸을 불렸다면 이미 인대와 근육이 이완돼 있는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마사지사가 인위적으로 인대ㆍ근육에 힘을 가한다면 자칫 허리에 손상을 줄 수 있다.

Tuesday, February 2, 2010

"암과의 전쟁 50년…체험으로 이겨낼 방법 터득했지요"
"나는 50년 동안 암과 싸워 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어떤 조건에서 암에 승리할 수 있는지를 체험으로 터득하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아니 지금 이 순간에도 그동안 체득한 방법과 의학적 지식으로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는 말이 옳을 것입니다."

서울대병원 부원장, 김영삼 전 대통령 주치의를 지낸 고창순 박사는 25세 때 대장암, 50세 때 십이지장암, 65세 때 간암 선고를 받았다. 그의 인생 전체를 암과의 싸움에 바쳤다 해도 무방할 정도다.


암 세포를 제거하기 위한 몇 차례 대수술을 받은 후, 그는 사람이 최소한의 장기만으로 얼마나 잘 살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실험인간'이 되었다.

"일본 쇼와대학 인턴으로 근무하던 1957년. 서울대병원 부원장직에서 물러나던 1982년, 그리고 서울대병원을 정년퇴임하던 1997년 세 번의 암 선고를 받았습니다. 그 이후로도 끈질긴 암은 여러 번 재발을 반복했습니다. 하지만 하늘을 원망하거나 내 운명에 좌절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웃으면서 살아야지요."

고창순 박사는 암 선고를 받을 때마다 이겨낼 자신이 있었다. 암 세포를 제거하기 위해 수술실에 들어가는 순간에도 담당의사에게 "눈에 보이는 암세포만 잘 제거해라. 나중에 재발하는 건 내가 면역력을 강화해 이겨내겠다"고 말할 정도 였다.

그는 면역력을 기르기 위해 지금도 운동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매일 자택 근처 학교 운동장에서 한 시간씩 걷고 집에서도 수시로 스트레칭을 한다. 아령은 물론 집에 있는 각종 방망이 등은 모두 그의 운동기구다. 그는 "적을 이겨 본 사람들에겐 싸움에서 이기는 나름대로의 전략과 본능이 있다"고 말한다.

"암이 지나가자 5년 전 파킨슨병이 나를 찾아왔습니다. 종일 몸이 무겁고 손이 떨리는 것은 물론 껌을 씹지 않으면 입이 말라 말을 하기도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모든 욕심을 버리고 평범한 뒷산 같은 '범산'이 되려고 마음먹게 됐습니다."

'범산'은 고창순 박사가 직접 지은 그의 호(號)다. 말없이 늘 그 자리에 있는 평범한 뒷산처럼 욕심 없고 부드러운 사람이 되겠다는 것이 그의 의지다.

암과의 투쟁에서 늘 승리한 그였지만 파킨슨병이 찾아왔을 때 그는 '기가 죽는다'는 감정을 느꼈다고 한다. 평생 파킨슨병 약을 복용해야 하는데 그 약이 몸을 기운없게 만들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이런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그는 욕심을 버리고 선을 행하는 사람이 되고자 다짐했다. "욕심을 채우면 배가 무거워져 침몰하지만 욕심을 버리고 가벼워지면 좋은 항구에 도착할 수 있다"고 말하는 그는 마치 암과 파킨슨병 모두를 초월한 듯 보였다.

"요즘 의과대학은 '기술자로서의 의사'를 만드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마음이 따뜻한 의사'를 만드는 인성교육이라고 봅니다. 후배들이 인간애를 실천하는 의사가 되도록 격려하고 돕는 것이 제 남은 소임입니다."

인터뷰 내내 편안함을 잃지 않던 고창순 박사가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의학의 '의(醫)'자는 원래 돕는다는 의미에서 출발한 말인데 요즘 의사들은 인류 행복에 기여하려는 의지가 약하다"는 것이 그의 지적이다.

환자는 원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환자 처지에서 생각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진료 철칙.

수십 년 진료를 하면서 고창순 박사는 평생 환자와 한 번도 말다툼한 일이 없었다.

고 박사는 정년퇴임 후 제자 양성에 힘써 왔다. 제자를 만나고 그들의 연구를 격려하면서 그는 암과 파킨슨병에서 비롯된 모든 노곤함을 잊고 커다란 기쁨을 느끼는 듯했다. 굴곡 많은 삶의 발자취 속에서도 그의 얼굴에는 여전히 희망과 웃음이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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